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튀르크 전쟁 (문단 편집) === 6차 베네치아-오스만 (모레아) 전쟁 전반 === 15년 전 [[크레타]]의 상실을 기억하던 베네치아는 2차 빈 공방전에서 오스만 군대가 패배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즉시 신성 동맹에 가입하였고 함대를 출동시켰다. 첫 번째 목표는 레프카다 섬이었다. 16일 동안의 포위 공격으로 함락시키는데 성공한 후, 오스만 제국의 [[달마티아]] 지역을 공격하고 프레베자와 보니차 만을 점령한다. 그 후, [[하노버 선제후국]]과 [[작센 선제후국]]의 용병을 고용한 후 [[코르푸]]에 집결한 뒤 [[모레아]] 정복에 향한다. 이를 들은 [[그리스인]]들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1685년 6월 21일 베네치아 함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향해 진격했고 베네치아의 옛 요새 코로니에 상륙한다. 그리고 연이어 요새를 함락한 베네치아군은 [[이오니아 제도]]로 향했으나 겨울에 불어닥친 질병으로 전투는 지속되지 못하고 휴강상태에 들어간다. 이듬해 3월초 베네치아군은 메세니아만을 공격했다. 옛 나바리노 성을 함락한 베네치아군은 이스마일 파샤의 군대를 격퇴시켜 [[코린트]]로 후퇴시키고 다시 병력을 모은 뒤 공격했지만 모르시니의 군대에 의해 격파당해 코린트는 함락당했다. 그러나 9년 간의 전쟁으로 신병과 용병이 탈영을 해 당시 진격은 늦춰졌다. 그러는 사이 메흐메트 파샤는 파트라에 진지를 구축했지만 쾨니히스마르크의 공격에 파트라는 함락당했고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마지막 오스만군 요새를 함락시키는 데 성공했고 그 후 [[아테네]]로 입성했다. 그 와중에 베네치아 군이 아테네의 오스만 수비군과 싸우며 오스만 측의 화약고였던 [[파르테논 신전]]에 대포를 명중시켜 당시까지만 해도 고대 그리스 시대의 원형을 상당히 잘 유지하고 있던 2000년된 신전을 파괴한 일이 있었다. 아테네를 빼앗긴 오스만 제국군은 테베에 군대를 집결 시키고 아테네 교외의 아티카 반도에 진지를 구축했지만 그곳의 그리스인들은 오스만 제국과 함께 싸울 의사가 없어서 아테네에서 후퇴해 네그로폰테를 공격했다. 네그레폰테에 상륙한 베네치아군은 요새를 포위한후 공격을 했지만 실패로 끝나고 오히려 질병이 퍼져서 하노버와 헤센 용병은 그리스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모르시니는 베네치아로 돌아가고 새로운 사령관으로 지올라노 카르나로가 부임했다. 카르나로는 그리스보다는 달마티아 지역 공격을 주된 목표로 삼았다. 그는 크로아티아의 작은 시골도시 신지를 공격해고 크로아티아의 지역 민병대를 모집해 공격하지만 대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헤르체그 노비 요새가 함락당해 오스만 제국군은 저항을 포기하였고, 라구사 지역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